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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보

탄소세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by formodoo 2025. 4. 14.

기후 변화는 이제 경제의 외곽 이슈가 아닙니다. 산업 구조와 시장 질서, 소비자의 삶까지 전방위로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되었죠. 그 한가운데에 ‘탄소세’가 있습니다.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이 제도는 환경 보호와 경제적 부담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요?

 

공장에서 나오는 CO₂, 세금 문서에 동전을 넣는 손, 나뭇잎과 그래프가 배치된 탄소세를 상징하는 그림

 

1. 탄소세의 탄생 배경과 목적

기후 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등장한 탄소세

기후 변화는 이제 더 이상 과학자들의 경고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상이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유례없는 폭우와 가뭄, 빈번한 산불, 계절을 잃은 작물들. 우리가 체감하는 이상기후의 배경에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의 과잉 배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그 구조 변화의 시작점 중 하나가 바로 탄소세입니다.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던 오염에 경제적 실체를 부여하는 작업입니다. 말하자면 시장이 환경 문제에 책임지게 하는 방식이지요. ‘오염자 부담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이제 탄소를 싸게 배출할 수 없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탄소세의 구조와 적용 방식

탄소세는 이산화탄소 톤당 얼마의 금액을 매기는 방식으로 설계됩니다. 마치 무게로 과일 값을 정하듯, 배출량에 따라 비용이 결정되지요. 대부분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업들이 주 대상인데요. 석탄 발전소나 정유 회사, 제조업체들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나라에 따라 적용 범위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곳은 에너지 산업에 국한되지만, 어떤 국가는 수송, 건설, 농업 부문까지 넓히고 있습니다. 세율 역시 제각각입니다. 환경 문제에 민감한 북유럽 국가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개발도상국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점진적 인상을 택하기도 합니다. 결국 핵심은 하나입니다. 탄소를 많이 쓰는 구조에서 적게 쓰는 구조로, 비용 구조를 통해 유도하는 것이지요.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탄소세 도입

1991년,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했습니다. 당시에는 생소하고 실험적인 정책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 30개국 이상이 탄소세를 도입했거나 계획 중입니다. 핀란드, 스위스, 캐나다, 프랑스, 일본에 이르기까지 나라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의 목적은 같습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시장을 바꾸자’는 것이지요. 특히 유럽연합이 추진 중인 ‘탄소 국경조정제도(CBAM)’는 국제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EU 내 생산자에게는 탄소세를 매기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제품에도 동일한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는 탄소세가 단지 국내 환경정책이 아니라, 무역 질서와 산업 경쟁력의 규칙까지 바꾸는 흐름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제는 누가 더 싸게 만드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깨끗하게 만드는가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2. 산업계의 시선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부담

탄소세는 산업계 전반에 일종의 경고음처럼 울립니다. 특히 철강, 시멘트, 화학처럼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고, 배출량이 많은 산업군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이들은 생산 공정 자체가 탄소와 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기에, 세금이 올라가면 생산비도 가파르게 오르게 마련입니다. 비용 상승은 가격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해외시장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산업들이 대체로 한 나라의 기반 산업이라는 점입니다. 수출 주력 품목이거나, 고용을 책임지는 산업일수록 탄소세는 단순한 부담을 넘어 정책적 딜레마를 유발합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산업 고도화를 막 시작한 단계에서 탄소세는 ‘기후 정의’의 관점에서도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의 책임은 선진국이 더 크지만, 규제의 강도는 모두에게 똑같다는 점에서 이런 반발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친환경 기술 전환의 촉매제

그렇다고 탄소세가 산업계를 짓누르는 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시점에서는 기술 혁신의 촉진제가 되기도 합니다.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들은 고효율 장비를 도입하고,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저장하거나 재활용하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에 투자하게 됩니다. 또 일부 기업은 아예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탄소 배출 자체를 줄이는 전략을 취합니다. 이처럼 탄소세는 기존 산업 구조를 뒤흔드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과 기술을 열어젖히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중소기업의 이중고

하지만 모든 기업이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은 자금 여력도 있고, 기술 투자에 대한 판단 능력도 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은 탄소세가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생산 라인을 교체할 자본이 없고, 관련 인재를 영입할 여력도 없습니다. 세금은 오히려 고정비로 작용해 경쟁력을 갉아먹습니다. 이 상황을 방치하면 탄소세는 산업 생태계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중소기업에는 별도의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세제 감면, 기술 전환 자금 지원, 공동설비 구축 같은 현실적인 지원 없이는 탄소세의 긍정적 효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큽니다. 탄소 감축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더 취약한 주체가 먼저 무너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소비자는 무엇을 부담하고 있는가

간접 비용으로 전가되는 탄소세

탄소세는 원칙적으로 오염을 유발한 기업에게 부과되는 세금입니다. 하지만 시장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세금이라는 비용이 발생하면, 기업은 그것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전기 요금이 오르고, 물류비가 상승하며, 식료품이나 생필품 가격까지 영향을 받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기업이 부담하지만, 실제로는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셈이지요. 특히 저소득층에게는 이 영향이 더욱 큽니다. 생활비 중 필수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탄소세는 상대적으로 더 무거운 부담이 됩니다. 이를 감안해 몇몇 국가는 ‘기후 배당제’라는 보완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탄소세로 걷은 세금을 국민에게 일정 비율로 환급하는 제도지요. 일종의 세금 환급인데, 탄소를 적게 쓴 사람일수록 이득을 보게 됩니다. 이런 방식은 탄소 감축과 소득 재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입니다.

가격 신호를 통한 소비자 행동 변화

탄소세는 단순히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호’를 보냅니다. 바로 시장 가격이라는 언어로 말이지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소비자 행동을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 봅니다. 탄소세로 인해 전기차의 상대적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선택하거나, 가까운 거리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즉, 탄소세는 소비자에게 "이 방향으로 가면 보상이 있다"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장치인 셈입니다. 이처럼 행동 경제학과 환경 정책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제도 설계가 얼마나 정교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정보 비대칭과 선택의 제한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소비자가 ‘탄소 발자국’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품은 어떤 공정을 거쳐왔는지, 어떤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대체재가 충분하지 않거나, 비용 차이가 너무 크면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이를 ‘정보 비대칭’과 ‘선택의 제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소비자가 환경 친화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컨대 에너지 등급 라벨링 확대, 탄소 성적표제 도입, 공공 교통 인프라 개선 등이 그 예입니다. 결국, 탄소세는 소비자에게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지원과 함께 작동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선택이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먼저 깔아줘야 하니까요.

4. 탄소세 수입의 활용과 사회적 합의

세수의 재분배

세금이란 본래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걷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시 돌아오는 방식에 따라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탄소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금이 단지 국고에 쌓이기만 하고, 구체적인 환원 계획 없이 운영된다면 국민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탄소세 수입의 ‘용처’는 단지 행정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와 윤리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실제로 많은 국가는 이 세금을 신재생에너지 투자, 에너지 효율 개선, 저소득층 지원 등 ‘기후 복지’ 성격의 분야에 사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탄소세 수입을 통해 전기요금 인하에 보조금을 투입했고, 캐나다는 가정에 직접 ‘기후 환급’이라는 이름으로 현금을 돌려주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세금을 걷는 것도 어렵지만, 그걸 어디에 쓰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돈의 흐름이 공정하고 투명할 때에만 국민들은 ‘세금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정치적 갈등과 공론화의 필요성

탄소세는 친환경 정책이면서 동시에 경제 정책입니다.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면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는 정부의 연료세 인상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습니다. 친환경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민 경제를 압박하는 정책으로 인식됐던 것이지요. 이러한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 해도, 충분한 공론화 없이 밀어붙이면 민심은 돌아섭니다. 시민 사회, 산업계, 환경 단체, 정치권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탄소세는 ‘기술적 정책’이기 전에 ‘사회적 계약’입니다.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를 다루는 만큼,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의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해집니다.

형평성과 정의의 원칙

탄소세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라는 프레임 안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동일한 양의 탄소를 배출해도 어떤 사람은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어떤 집단은 오히려 정책으로부터 혜택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도심에 사는 고소득층은 대중교통 이용이 용이하고, 전기차 구입도 가능하지만, 농촌에 사는 저소득층은 오래된 경유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이 질문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를 던집니다. 탄소세는 단지 환경을 위한 세금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할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책 설계자는 ‘누가 얼마나 부담하고, 누가 얼마만큼 돌려받는가’를 철저히 따져야 합니다. 정의롭지 않은 친환경은 오히려 사회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정책의 지속 가능성도 위협받게 됩니다. ‘탄소를 줄이자’는 구호가 진정한 공감대를 얻으려면, 그 안에 정의의 원칙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맺음말

탄소세는 세금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하나의 사회적 질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 말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라는 본질이 숨겨져 있습니다. 물론 탄소세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마법의 해법은 아닙니다. 설계가 잘못되면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고, 사회적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 설계된 탄소세는 시장의 언어를 통해 환경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제 중요한 건 방향입니다. 우리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만, 그 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특히 정치적 용기와 사회적 합의의 힘이 요구됩니다. 탄소세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집단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탄소세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균형은, 바로 지금 우리가 시작해야 할 대화에서 비롯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