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성장하면 모두가 잘살게 될까요? 숫자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체감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위 1%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다수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습니다. 이 불균형은 단지 소득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 건강, 기회, 심지어는 희망까지 좌우하는 거대한 구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
1. 불평등의 구조적 배경
자본 수익률과 노동 소득의 격차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역사적인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하나의 간명한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높다면, 자산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는 필연적으로 벌어진다." 이 주장은 단지 이론적인 문장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의 현실을 설명하는 강력한 프레임입니다.
자본 수익률은 곧 자산이 자산을 낳는 속도를 말합니다. 한 사람이 주식, 부동산, 채권 같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이 자산이 이자를 낳고, 배당을 낳고, 시세차익을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자본은 '복리의 마법'을 통해 부를 자동적으로 불려줍니다. 반면, 노동 소득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임금은 해마다 몇 퍼센트 오를 뿐입니다. 그것도 운이 좋을 경우에만 그렇죠.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누적되고, 구조적인 격차로 자리 잡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단지 개인의 능력이나 근면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노력이나 교육이 격차를 좁히는 수단이 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큰 모순이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즉, 시장은 공정한 룰을 제공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공정한 출발선에서 기득권을 고착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동화와 디지털화가 가져온 고용시장 변화
4차 산업혁명이 경제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깊습니다. 로봇과 인공지능, 그리고 플랫폼 기술은 전통적인 고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면 중산층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공식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안정된 삶을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자동화 기술은 특히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제조업, 사무직, 서비스업 등 많은 분야에서 중간소득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대체하는 건 고숙련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자본을 투입해 시스템을 운용하는 소수의 기업가들입니다. 다시 말해, 기술의 혜택은 극소수에게 집중되고, 대다수는 소외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플랫폼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달이나 택시, 프리랜서 형태의 노동은 유연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안전망 바깥에 놓여 있습니다. 이는 고용 불안정을 낳고, 장기적으로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말처럼, 기술은 기회를 확대하는 동시에 또 다른 배제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글로벌화의 이중적 효과
세계화는 생산과 자본, 그리고 사람의 이동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선진국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소비자 가격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경제 효율성이 올라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각국의 노동시장은 상처를 입었고, 그 피해는 중산층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특히 선진국의 제조업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아시아나 동유럽으로 빼앗겼습니다. 예전에는 안정적인 공장 근로자였던 이들이 이제는 저임금 서비스직으로 밀려났고, 생활수준은 정체되거나 후퇴했습니다. 반면 다국적 기업과 상위 자산가들은 해외 생산과 조세 회피 전략을 통해 더 큰 수익을 거뒀습니다.
글로벌화는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확장으로 작용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경쟁에서 밀려나는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국경 없는 자본과 노동 시장에서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고, 그 불안은 점점 더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세제와 복지 시스템의 후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율에 맡기자는 논리는 감세와 규제 완화로 이어졌고, 그 결과 복지 예산은 줄고 공공서비스는 민영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상위 소득자들에게 유리한 세제 구조는 이때부터 본격화되었고, 누진세의 실효성은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법인세는 지속적으로 인하되었고,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는 노동소득보다 낮은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 자산가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정부는 재정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할 여력을 점점 잃어갔습니다. 이는 결국 사회적 사다리를 끊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죠.
복지 시스템의 후퇴는 교육, 의료, 주거 등 삶의 기본 조건을 시장 논리에 맡기게 만들었고, 이는 결국 자산과 소득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는 사회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기회의 평등이 무너지는 순간, 사회 전체의 역동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불평등은 단지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2. 소득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
소비 위축과 내수 기반의 약화
경제가 살아 움직이려면 사람들이 돈을 써야 합니다. 소비는 기업의 생산을 자극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다시 가계로 돌아가는 선순환의 출발점이지요. 그런데 소득이 극단적으로 쏠리면 이 순환 고리가 끊어집니다. 상위 계층의 소비는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하루에 열 끼를 먹을 순 없지 않습니까?
반면, 중하위 계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상황은 다릅니다. 이들은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소득의 대부분을 생활비로 사용합니다. 즉, 이 계층이 돈을 쓸 수 있어야 경제 전체의 수요 기반이 튼튼해집니다. 그런데 불평등이 심화되면 그 기반이 약해집니다. 사람들은 지갑을 닫고, 기업은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생산을 줄이고, 이는 다시 고용 축소와 임금 정체로 이어집니다.
특히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는 소비의 위축이 직접적인 타격으로 이어집니다. 경제 성장은 지표로는 가능해 보여도, 실질적인 체감 경기는 오히려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에 빠진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내수 침체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소득의 균형 분포는 성장의 기반이 됩니다.
생산성 저하와 인적 자원의 낭비
인적 자원은 한 나라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은 교육, 건강, 주거 환경에 대한 접근성을 가로막고, 결국 사회 전체의 역량을 떨어뜨립니다. 예컨대 한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미래의 과학자, 예술가, 기업가를 잃는 셈입니다.
이처럼 불평등은 단지 현재의 소비 문제를 넘어, 미래의 성장동력까지 잠식합니다. 교육 격차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빈곤의 대물림을 낳습니다. 건강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소득층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이는 노동생산성 저하로 연결됩니다. 건강하지 못한 인구가 늘어나면, 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돌아가도 지속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연구에서도, 소득 분포가 보다 평등한 국가일수록 인적 자본의 효율성이 높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사회 전반에 고루 퍼지는 경향이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기회의 평등’은 단지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경제를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실질적인 조건인 셈입니다.
사회적 불안정과 정치적 리스크
불평등은 단지 가계의 통장 잔고 차이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감정과 인식에 깊은 균열을 만들어냅니다. 소외된 계층은 분노하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갈등이 심화되고, 공동체 의식은 약화됩니다. 극단주의 정치가 득세하고, 사회적 연대는 무너집니다.
정치적 불안정은 곧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이어집니다. 기업은 예측 가능성을 중시합니다. 정치가 불안하면 투자를 미루고, 사업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유인이 커집니다. 투자 위축은 일자리와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적 불만을 키우는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 결국 불평등은 사회적 비용을 높이고,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분노의 정치가 확산된 것도, 결국은 이 같은 불평등 구조 때문입니다. 경제적 좌절이 정치적 극단주의를 낳고, 이는 다시 시장의 안정성과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구조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정치 리스크를 경제 문제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창업과 혁신 생태계의 약화
창업은 경제의 활력소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가 창출되며, 기존 산업도 자극을 받습니다. 그런데 불평등이 심해지면 창업의 문도 좁아집니다. 자본을 가진 사람만이 새로운 시장에 도전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에 옮기기 어렵습니다.
또한 소득이 넓게 분포된 사회일수록 소비의 다양성이 커집니다. 이는 창업가에게 다양한 수요를 겨냥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반면, 특정 소득층에만 자원이 집중되면 시장도 그에 맞춰 왜곡되고, 혁신은 제한됩니다. 스타트업이 활발한 사회일수록 소득 분포도 균형 잡혀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더구나 창업 초기 단계에서는 안정적인 사회안전망이 매우 중요합니다.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하지만,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한 번의 실패가 곧 생계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도전을 꺼리게 됩니다. 결국 경제는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고, 변화와 혁신이 사라진 사회는 성장의 탄력을 잃게 됩니다.
3.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해법
누진적 과세와 자본소득세 강화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수단은 바로 세금입니다. 조세 정책은 단순히 국가의 재정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시장에서 발생한 격차를 조정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장치입니다. 특히 누진세 구조는 소득이 많을수록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 재분배를 실현하는 핵심 메커니즘이지요.
문제는 현실에서는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자본소득—즉 배당, 이자, 주식 차익, 임대수익 등—에 대한 과세는 노동소득보다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산가일수록 오히려 세율이 낮아지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겁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부유세와 같은 자산세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기업과 초고소득층에 대한 공정 과세는 국제 협력을 통해 추진해야 할 과제입니다. 다국적 기업이 조세 회피를 위해 세율이 낮은 나라에 법인을 두는 일은 이제 일상화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OECD를 중심으로 '글로벌 최저 법인세' 논의가 시작된 것이지요.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 세금을 통한 재분배를 실현하려면, 국경을 넘어선 조세 정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본소득과 사회보장 확대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기술 실업은 현실이 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 전통적인 일자리 모델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대에 '노동'을 기반으로 한 소득 시스템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소외시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기본소득'입니다.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모든 시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정치적 논란이 많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소비 기반을 유지하는 데 있어 매우 유효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핀란드,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시범 시행을 통해 그 효과를 실험한 바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기본소득 외에도 조건부 현금지원(CCT), 건강보험 확대, 주거복지 강화 등 다양한 사회보장 시스템이 함께 추진되어야 합니다. 복지는 단지 '도움'이 아니라, 모두의 경제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입니다. 의료비 걱정 없이 병원에 가고, 집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야 진짜 경제활동이 가능한 것이죠.
고용 안정성과 노동시장 개혁
노동은 단지 소득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의 자아실현과 사회적 참여를 가능하게 해주는 통로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플랫폼 노동이 확산되면서 노동의 질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배달, 택시, 프리랜서 등으로 대표되는 플랫폼 노동자는 전통적인 고용계약 밖에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용의 안정성은 단순히 직장의 지속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사람들은 소비를 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의 현실화, 고용보험 확대, 유연한 노동시간제 도입 등 다양한 정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노동자에게 교섭권과 조직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조의 힘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제도화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등장하는 만큼, 법과 제도 역시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합니다.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자로 인정하고, 이들에게도 산재보험과 국민연금이 적용되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포괄적 복지국가'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교육 접근성과 기술 재훈련
교육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가장 강력한 사다리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사다리가 점점 더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교육의 과열, 대학 서열화, 지역 간 격차는 모두 교육 기회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삶을 결정짓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저소득층 아동을 대상으로 한 조기 개입 프로그램, 방과 후 학습 지원, 디지털 교육 인프라 구축 등이 시급합니다. 학교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이동성을 실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술 변화에 따른 '평생 교육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일자리는 계속 바뀌는데, 사람들은 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실직하거나 불안정한 일자리에 머무르게 됩니다. 재훈련, 직업 전환 교육, 온라인 교육 플랫폼 확대 등을 통해, 누구나 언제든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불평등을 줄이고, 경제의 역동성을 유지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입니다.
4. 장기적 관점에서의 경제 성장과 형평성의 공존
포용적 성장의 필요성
경제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때는 GDP가 오르면 만사형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숫자의 성장만으로는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체감합니다. 그래서 국제기구들도 방향을 틀었습니다. OECD, IMF, 세계은행 등은 이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포용적 성장은 말 그대로 ‘모두를 끌어안는 성장’입니다. 경제가 커지더라도 그 열매가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지요. 대신 성장의 혜택이 다양한 계층과 지역에 고루 퍼질 수 있도록 설계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단순한 분배를 넘어,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참여의 보장이 포함된 개념입니다.
이는 경제와 복지가 대립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이기도 합니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며,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인 성장의 기초라는 논리가 이제 세계 경제의 새로운 상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포용적 성장은 사람에 투자하고, 신뢰를 쌓으며, 장기적으로 더 튼튼한 경제 기반을 만드는 방향입니다.
공공 투자와 지속 가능한 일자리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는 종종 인프라 투자에 나섭니다. 도로, 철도, 통신망 같은 전통적인 사회간접자본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공공 투자를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교육, 의료, 복지,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 같은 분야는 앞으로의 시대를 떠받치는 새로운 성장 인프라입니다.
이런 분야에 대한 투자는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에 그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컨대 돌봄 노동이나 공공의료 시스템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냅니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일석이조의 전략이지요.
특히 기후 위기 시대에는 친환경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중요합니다. 재생에너지, 전기차, 탄소중립 건축 등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서, 미래의 산업이자 고용 창출의 거점입니다. 정부의 전략적 투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민간이 하기 어려운 영역에 정부가 나서서 기초를 닦아주는 것, 그것이 공공 투자의 본질입니다.
사회적 연대와 경제 시스템의 재설계
경제는 숫자로만 굴러가지 않습니다. 신뢰와 연대, 협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사회를 지탱합니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이 연대가 무너지고, 사회는 분열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래서 경제 시스템 자체를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유가치’라는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업의 목적은 단지 이윤 창출이 아니라, 사회 문제 해결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커뮤니티 기반 경제 모델 등은 전통적인 시장경제가 놓치는 지점을 메우며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경제 시스템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잘 사는 방법, 이윤과 공익이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이야말로 미래형 경제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법과 제도의 뒷받침, 시민의 참여, 그리고 정부의 철학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기술 발전과 윤리적 자본주의
기술은 경제를 움직이는 새로운 엔진입니다.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플랫폼 기술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느냐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기술 그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그 활용 방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플랫폼 경제는 사용자에게는 편리함을 주지만, 노동자에게는 불안정성을 안깁니다. 알고리즘은 효율을 극대화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고 불공정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기술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완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윤리적 자본주의’가 중요해졌습니다. 기업이 단지 수익을 좇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공정성을 고려하며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고, 시민의 감시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기업 내부의 철학 변화가 요구됩니다. 기술이 인간을 위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 전체가 위태로워집니다.
기술을 인간의 존엄과 연대, 형평성이라는 기준 속에 담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경제도 결국 사람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맺음말
우리가 흔히 경제를 숫자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장률, 수출 증가율, 고용 지표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그런 숫자들이 말해주지 못하는 진실이 있습니다. 바로, ‘누가’ 그 성장을 누리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소득 불평등은 그 물음에 가장 직관적이고도 냉정하게 답해주는 지표입니다.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삶의 기회와 존엄,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까지 좌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제가 성장했는데, 왜 내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 그 이유는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나눠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은 경쟁을 통해 효율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공정한 분배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은 결국 사회 전체의 몫입니다. 정치의 몫이고, 제도의 몫이며, 시민들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성장과 분배는 흔히 양자택일의 문제로 오해되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분배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소비를 진작시키며, 사회적 불안을 줄이는 것, 이 모두가 분배가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입니다. 즉, 분배는 성장의 전제이자 파트너입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어떻게 더 많이 성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성장할 것인가?”로 말입니다. 그 질문은 단지 경제학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를 묻는 정치적·윤리적 선택입니다. 불평등을 줄이고, 함께 잘 사는 길을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단단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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