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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보

팬데믹이 만든 유동성 버블의 전모

by formodoo 2025. 3. 30.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의 시계를 멈춰 세웠습니다. 갑작스러운 봉쇄와 소비 위축은 실물경제를 단숨에 마비시켰고, 각국 정부는 사상 초유의 통화·재정 정책을 쏟아내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수십 조 달러 규모의 자금이 세계 경제 곳곳에 뿌려졌고,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대담한 유동성 실험에 들어가게 됩니다.

경제는 표면적으로 반등했고, 위기는 넘긴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자산시장은 그 반등을 훨씬 넘어서 버렸습니다. 주식, 부동산, 암호화폐까지... 돈은 실물이 아닌 기대를 쫓아 움직였고, 그 끝에는 거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팬데믹 이후의 유동성이 자산시장에 어떤 궤적을 남겼는지, 그 흐름과 본질을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상승과 하락을 의미하는 화살표가 팬데믹 이후 경제의 불안정성을 표현

 

1. 유동성 폭탄의 시작

제로금리 시대의 가속

2020년 3월, 코로나19가 세계를 멈춰 세웠을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기준금리를 0% 수준으로 전격 인하한 것이죠. 이는 단기 처방이 아니었습니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돈을 풀겠다'는 신호였고, 그 선언은 시장의 게임의 룰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본은 더 이상 예금이나 국채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자 수익이 사라진 세상에서 돈은 수익을 좇아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중앙은행이 사실상 위험자산의 가격을 떠받치겠다고 한 셈이었고, 시장은 그 메시지를 곧장 받아들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위험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며 레버리지를 동원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자산 시장은 통화정책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양적완화의 무제한 확대

제로금리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미국은 곧바로 양적완화(QE)를 무제한으로 확대합니다. 국채뿐 아니라 회사채, MBS(주택저당증권)까지 대규모로 매입하며, 연준은 사실상 ‘마지막 매수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선언이었죠.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2020년 3월의 패닉 셀링 이후, 단 몇 달 만에 주가는 반등했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국채 수익률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투자자들은 고수익을 찾아 더 위험한 자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자산 가격은 실물경제와 무관하게 상승했고, ‘실물의 위기’와 ‘자산의 축제’가 동시에 벌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현금 지원과 소비 진작 정책

미국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지급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개인당 수천 달러가 송금되었고, 실업급여도 대폭 확대되었습니다. 본래 목적은 생계 안정이었지만, 그 자금의 일부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로빈후드 같은 온라인 주식 플랫폼에서는 하루아침에 수백만 명의 신규 계좌가 개설됐고, 암호화폐 거래소는 신규 유입으로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주식, 비트코인, NFT, 부동산까지… 돈은 어디든 수익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MZ세대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시장의 새로운 주체로 떠올랐고, 유동성은 더 큰 유동성을 낳는 구조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팽창했습니다.

정부의 의도는 위기 대응이었지만, 결과는 자산시장 과열이라는 새로운 문제였습니다. 팬데믹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멈췄지만, 돈의 흐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빠르게, 더 위험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돈의 시대'로 진입하게 됩니다.

2. 자산시장 전반의 광란

주식 시장의 비이성적 급등

실물경제는 여전히 봉쇄 상태에 있었고,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주식시장만은 전혀 다른 세계처럼 움직였습니다. 나스닥과 S&P500 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고, 마치 위기 속에서만 자라는 생명체처럼 기술주들은 폭등했습니다. 테슬라, 애플, 아마존 등 실적과 무관하게 시장은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상상을 초월하는 밸류에이션을 부여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제 실적을 보지 않았습니다. ‘꿈을 얼마나 크게 그리는가’, ‘내러티브가 얼마나 매혹적인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었죠. 그 흐름의 정점을 보여준 것이 바로 밈 주식입니다. GameStop, AMC 같은 종목이, 실적도 전망도 없이 폭등했습니다. 투자 이유는 단 하나, ‘사람들이 사고 있으니까’. 이것이 시장의 논리가 된 순간, 자산 가격은 더 이상 경제적 지표로는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폭발적 성장

주식시장보다 더 뜨거운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암호화폐 시장입니다. 비트코인은 2020년 말부터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고, 2021년에는 6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더리움, 도지코인, 심지어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알트코인들이 일제히 상승했죠. NFT는 디지털 아트를 수백만 달러에 거래하게 만들었고, 블록체인은 ‘금융의 미래’로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안이라 불렀고, 탈중앙화된 화폐라며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넘치는 유동성과 수익률에 굶주린 자금이 있었습니다. 시장은 설명보다 기대를 좇았고, 투자자는 리스크보다 ‘내일 오를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투기와 혁신이 같은 언어로 말해지던 시대, 암호화폐는 그 시대의 상징이었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초과열

안전자산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도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주요 도시의 집값은 팬데믹 이전보다 20~30% 이상 상승했고, 어떤 곳은 단 1년 만에 수억 원씩 오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못 산다'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정부의 규제보다 먼저 시장이 반응했습니다.

저금리는 대출 부담을 낮췄고, 공급은 제한적이었으며, 유동성은 넘쳤습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부동산 시장은 전례 없는 과열 상태에 진입하게 됩니다. 한국, 미국, 독일, 캐나다 등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동일한 현상이 벌어졌고, ‘이건 버블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일상 대화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문제는, 누구도 ‘멈출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더 늘고, 수요가 늘면 가격은 더 오릅니다. 그 순환 속에서 부동산은 투자가 아니라 ‘공격적 방어’의 대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부동산이 아니라 기회를 사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시장은 비이성과 조급함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해갔습니다.

3. 인플레이션과 불균형

공급망 붕괴와 수요 급증의 충돌

팬데믹은 전 세계의 생산과 유통망을 무너뜨렸습니다. 공장은 멈췄고, 물류는 정체되었으며, 국경은 닫혔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각국 정부는 막대한 유동성을 시중에 풀었고, 사람들은 갑자기 ‘돈은 있지만 살 수 없는’ 세상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공급은 막혔는데, 수요는 폭증했습니다. 이 기묘한 충돌은 순식간에 병목 현상을 만들어냈고, 원자재 가격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는 없어서 못 구했고, 밀과 옥수수, 에너지 자원까지 줄줄이 가격이 뛰었습니다. 실물경제의 몸속 깊은 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온 셈입니다.

인플레이션의 재현

2021년 하반기,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는 다시 ‘인플레이션’이라는 오래된 단어와 마주했습니다. 처음에 연준은 이 현상을 ‘일시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공급망만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물가도 잡힐 것이라는 기대였죠.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고, 물가는 계속 올랐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 8%, 9%를 넘나들며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그제야 연준은 뒤늦게 금리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냈지만, 이미 시장은 고물가에 깊숙이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그 후폭풍은 시작에 불과했던 셈입니다.

자산 불평등의 확대

자산 가격이 폭등한 시기, 모두가 함께 이익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부를 빠르게 축적했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오르는 가격을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전세금은 두 배가 됐고, 주식은 이미 너무 비싸 보였습니다. 늦게 들어간 사람일수록 리스크는 더 커졌고, ‘참여하지 못한 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실질적으로 더 가난해지는 결과를 겪게 됐습니다.

이 불균형은 단순한 자산 격차를 넘어 사회 전반의 갈등 구조를 자극했습니다. ‘왜 누구는 불로소득을 얻고, 누구는 빚을 지는가’라는 질문은 정치적 감정과 세대 간 반목으로 이어졌고, 자산 불평등은 점점 더 복잡하고 깊은 사회 문제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4. 유동성 회수와 그 충격

금리 인상과 양적긴축(QT)의 시작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마침내 방향을 틀었습니다. 몇 년간 이어온 제로금리 정책을 종료하고, 본격적인 금리 인상 사이클에 들어섰죠. 동시에 연준은 그동안 사들였던 자산을 시장에 내놓는, 이른바 양적긴축(QT)도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제한 유동성'의 시대가 끝나고, '돈을 거두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채권 금리는 오르고, 주식시장은 조정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고위험·고수익 자산은 가장 먼저 흔들렸습니다. 대출은 줄고, 투자 심리는 얼어붙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시장은 혼란에 빠졌고, 자산 시장은 순식간에 수축 국면에 진입하게 됩니다.

암호화폐와 기술주의 붕괴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은 ‘가장 뜨거웠던’ 시장이었습니다. 암호화폐는 2021년의 영광을 뒤로하고 2022년부터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비트코인은 70% 이상 하락했고, 이더리움 역시 반 토막이 났습니다. 거기다 루나-테라 사태, FTX 거래소의 파산까지 겹치며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디지털 금'이라 불리던 비트코인은 더 이상 대안 자산이 아니었고, NFT와 같은 자산군은 순식간에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야말로 디지털 버블의 붕괴였습니다. 동시에 기술주 역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팬데믹 기간 내내 고성장을 구가하던 나스닥 대표 종목들은 절반 가까이 가치가 증발했습니다. 시장은 이제 꿈이 아니라 수익과 현금을 원하기 시작한 것이죠.

부채 위기와 신흥국 불안

고금리는 단지 소비와 투자만 위축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 곳곳에 숨어 있던 ‘부채 리스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이는 곧 기업과 국가의 재정 건전성에 직격탄이 됩니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은 글로벌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자, 신흥국의 통화는 약세로 돌아섰고, 외국인 자본은 빠르게 이탈했습니다.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이집트 같은 국가들은 외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외환위기 가능성에 노출됐고, IMF의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팬데믹이 만든 거품이 거둬들여지는 순간, 그동안 가려졌던 불균형과 취약성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유동성은 시장을 살렸지만,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기대를 낳았습니다. 그 기대가 꺼질 때, 충격은 고스란히 시장과 사람들에게 전가되었습니다.

맺음말

팬데믹 이후 쏟아진 유동성은 분명 위기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시점에선 돈을 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죠. 하지만 그 유동성은 어느새 생명을 구하는 해독제가 아니라, 시장을 부풀리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내놓은 해법이,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이 되어 돌아온 셈입니다.

유동성은 강력한 힘입니다. 그것은 경기를 부양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시장을 왜곡하고 자산의 가치를 현실과 분리시킬 수도 있습니다. 돈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빠르게, 더 높게 오르려 하고, 그 욕망은 시장에 쉴 틈 없는 열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그 끝은 항상 같습니다. 언젠가는 금리가 오르고, 자산 가격은 꺾이고, 시장은 조정을 겪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그 반환점을 돌고 있습니다. 무제한의 돈은 결국 유한하고, 진짜 회복은 자산이 아닌 실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에도 어렵게 배워가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위기의 순환 속에서 중요한 건, 과거를 기억하고, 거기서 교훈을 찾는 일입니다. 돈이 아니라 가치를 중심에 두는 회복, 유동성이 아니라 구조로 이어지는 성장. 그것이 우리가 다음 거품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 모릅니다.